서울 지역 이름별 어원 분석 – 중구 편

 

📘 3부. 서울 지역 이름별 어원 분석 – 중구 편


행정동/지역명 어원 및 유래
소공동 ‘소공(小宮)’은 작은 궁궐이라는 뜻. 조선시대 덕수궁의 부속 궁궐이 있었던 곳에서 유래
회현동 ‘회현(會賢)’은 어진 이들이 모이는 방(坊)이라는 의미. 조선시대 상류층 주거지
명동 조선시대 행정구역인 ‘명례방(明禮坊)’에서 유래. ‘밝고 예스러운 동네’라는 뜻
필동 붓 필(筆) 자를 써서 학문과 관련된 이미지. 실제로는 ‘필운대’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
장충동 ‘장(壯)’은 장수, ‘충(忠)’은 충성을 뜻함. 군사적 용도 및 왕실 행렬 경로와 관련
광희동 조선시대 ‘광희방(光熙坊)’에서 유래. ‘빛나고 화평하다’는 뜻의 한자 지명
을지로동 을지문덕 장군의 충절을 기려 지어진 근대 지명. 조선시대에는 ‘저자거리’로 불림
신당동 무속신앙에서 유래. ‘신(神)’은 신령, ‘당(堂)’은 사당 → 무당들이 있던 지역
다산동 실학자 정약용의 호 ‘다산(茶山)’에서 유래. 행정구역 조정으로 황학동 일부 분리
약수동 약수가 솟았던 지역에서 유래. 조선 후기부터 약수터로 유명했던 곳
청구동 ‘청(靑)’은 푸름, ‘구(丘)’는 언덕. 1960년대 이후 형성된 신주거지로 상징적 작명
황학동 조선시대 활터 ‘황학정(黃鶴亭)’에서 유래. ‘노란 학’은 장수와 지혜의 상징
중림동 ‘중앙의 숲’ 또는 중심 마을의 숲이라는 의미. 궁중 목재 수급지로 이용됨
만리동 ‘만 리를 내다보는 언덕’이라는 의미. 고지대 위치, 유배 인물의 전설 전해짐
충무로 이순신 장군의 시호 ‘충무(忠武)’에서 유래. 해방 후 영화·문화 중심지로 발전
남대문 숭례문(崇禮門)의 별칭. ‘남쪽의 큰 문’이라는 의미로 대중적으로 사용됨
버티고개 한자 ‘벌치(伐致)’에서 유래. ‘나무를 베어 만든 고개’라는 뜻. 조선시대 주요 통로







🏙 중구 내 어원이 담긴 지역 정리

지역명 어원 설명
버티고개 ‘벌치(伐致)’ → 나무를 베어 만든 고개에서 유래. 남산과 신당 사이 주요 통로
신당동 ‘신(神)’과 ‘당(堂)’ = 신당, 무속 신앙의 중심지였던 곳
필동 ‘필운대(弼雲臺)’라는 명승지에서 유래. 학문과 문필의 고장으로 해석
약수동 약수가 솟던 곳에서 유래. 조선 후기부터 샘이 있었던 지역으로 기록됨
황학동 활터인 ‘황학정(黃鶴亭)’에서 유래. ‘황학’은 노란 학, 장수의 상징
다산동 실학자 정약용의 호 ‘다산(茶山)’에서 유래. 후에 행정지명으로 정착
중림동 ‘중앙의 숲’ 또는 ‘마을 중심의 숲’이라는 의미. 조선시대 목재 공급지 역할
만리동 ‘만 리를 바라보는 언덕’이라는 뜻의 상징적 지명. 고지대에 위치






📚 중구 내 사연이 담긴 지역 정리



지역명 사연 및 역사적 맥락
충무로 해방 후 이순신 장군의 시호 ‘충무(忠武)’를 따서 명명. 한국 영화·출판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
명동 조선시대 명례방에서 유래. 일제강점기 근대 상업의 중심지 → 광복 후 패션·쇼핑 중심가로 발전
을지로 을지문덕 장군의 충절을 기리며 명명. 조선시대에는 저자거리(시장 거리)로, 근대에는 인쇄·조명 산업 중심
남대문(숭례문) 서울 4대문의 남문. ‘예(禮)를 숭상한다’는 의미. 서울의 대표적 상징 중 하나
회현동 한때 화교 거주지, 그리고 남산 아래 ‘회현지하상가’가 형성되며 지하경제 중심지로 번영
장충동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고급 주택가로 형성됨. 장충단공원에는 명성황후 추모와 관련된 유적이 있음
신당동 떡볶이 타운 1950~60년대부터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먹거리 골목. 당시 전쟁 세대의 추억을 담은 공간
서울역 일대 본래 ‘경성역’이라 불렸으며, 식민지 시기 관문이자 물류 중심. 광복 이후에도 교통 허브로 유지






이처럼 중구는 도시의 중심부로서 정치, 경제, 종교, 민속, 근대문화 등 다양한 사연이 중첩된 공간입니다.
지명 하나하나가 단순한 행정 단위가 아닌, 서울의 역사적 흔적을 담은 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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